최민희 의원 프로필을 한 줄로 정리하면 “언론운동 40년을 거쳐 민주당 최초의 여성 수석최고위원에 오른 재선 의원”입니다.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했고, 월간 ‘말’ 기자와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노무현 정부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19대(비례)·22대(경기 남양주갑)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리고 2026년 8월 17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18.35%를 얻어 최고위원 1위, 즉 수석최고위원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이력서만 보고 “순탄한 엘리트 코스였구나” 생각하시면 절반만 맞습니다.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에서 치른 딸 결혼식, 국감장에서의 MBC 보도본부장 퇴장 조치, 전당대회 도중 불거진 오마이TV 취재방해 논란까지, 그의 지난 1년은 웬만한 정치 드라마보다 굴곡이 많았거든요. 지지하는 쪽에서는 “싸울 줄 아는 언론개혁의 상징”이라 부르고, 비판하는 쪽에서는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최민희 의원 프로필의 기본 정보부터 경력의 흐름, 과방위원장 시절의 성과와 논란, 그리고 수석최고위원 당선 이후의 행보까지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풀어보려 합니다. 뉴스 헤드라인 몇 줄로는 잘 보이지 않던 맥락이 하나씩 이어지실 거예요.
최민희 의원 프로필 기본 정보, 나이와 학력부터 한 번에
최민희 의원은 1960년 12월 서울 출생으로 2026년 10월 기준 만 65세이며, 혜화여고와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언론운동가 출신 재선 의원이자 현재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이라는 점이 지금 그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한눈에 보는 기본 프로필 표
정치인 프로필을 찾아보실 때 가장 먼저 궁금한 건 결국 “몇 살이고, 어디 출신이고, 지금 무슨 자리에 있느냐”일 겁니다. 복잡한 설명보다 표 하나가 훨씬 빠르니, 핵심 정보부터 먼저 정리해 드릴게요.
| 항목 | 내용 |
|---|---|
| 이름 | 최민희(崔敏姬) |
| 출생 | 1960년 12월 3일, 서울 |
| 나이 | 만 65세 (2026년 10월 기준) |
| 학력 | 혜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
| 소속 정당 | 더불어민주당 |
| 지역구 | 경기 남양주시 갑 (22대) |
| 선수 | 재선 (19대 비례대표, 22대 지역구) |
| 현재 직책 |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미디어공공성강화TF 단장,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 |
| 주요 전직 | 22대 국회 전반기 과방위원장,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위원장 직무대행,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
| 종교 | 천주교 |
| 별명 | ‘촛불 국민 언니’ |
표를 보면 한 가지 흐름이 눈에 띕니다. 처음에는 언론 현장에서 기사를 쓰던 사람이었고, 그다음엔 언론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를 이끌었고, 이후엔 방송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에 들어갔다가, 마지막엔 방송·통신 법을 만드는 국회 상임위원장이 됐다는 점입니다. 비유하자면 축구 선수로 뛰다가, 심판 협회를 이끌고, 경기 규칙을 만드는 위원회 위원장까지 지낸 셈이죠. 한 분야를 선수, 감시자, 행정가, 입법자의 자리에서 모두 경험한 정치인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그래서 최민희 의원 프로필을 이해할 때는 ‘정치인’이라는 단어보다 ‘미디어 정책 전문가’라는 렌즈로 보는 편이 훨씬 잘 맞습니다. 그가 국회에서 어떤 상임위를 고집했는지, 어떤 사안에 유독 목소리를 높였는지가 대부분 이 이력에서 설명되거든요.
이화여대 사학과, 그리고 월간 ‘말’의 첫 기자
최 의원은 이화여대에서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사학과 출신이 언론인이 되는 경우는 꽤 흔한데, 과거의 기록을 읽고 맥락을 재구성하는 훈련이 기사 쓰기와 닮아 있기 때문이죠. 그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1985년, 해직 기자들이 중심이 된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만든 월간지 ‘말’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은 신문과 방송이 정부의 보도지침을 받아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말’은 제도권 언론이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진보 성향 시사지였고, 최 의원은 창간 무렵부터 이 잡지의 기자로 일했습니다. 일부 소개 자료에서 그를 ‘말지 1호 기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언론개혁’이라는 화두는 사실상 이때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기자 생활은 19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경험은 이후 그의 화법에도 그대로 묻어납니다. 질문을 돌려 말하지 않고,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는 스타일이죠. 국감장이나 방송 토론에서 그를 본 분들이라면 “기자 출신답게 질문이 날카롭다”는 인상과 “말이 너무 세다”는 인상을 동시에 받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둘 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특징입니다.
‘촛불 국민 언니’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
최 의원에게는 ‘촛불 국민 언니’라는 애칭이 있습니다. 19대 국회 임기를 마친 뒤 원외에 있던 시절, 그는 KBS·YTN·MBN 같은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과 새날·시사타파 같은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에 패널로 꾸준히 출연했습니다. 특히 대규모 촛불집회가 이어지던 시기 방송에서 시원시원하게 발언하는 모습이 지지층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이 별명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별명은 그의 정치적 자산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최 의원의 힘은 당내 조직보다 권리당원과 지지층의 직접적인 호응에서 나온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실제로 2026년 전당대회에서 그가 받은 표를 뜯어보면 권리당원 득표율이 18%대로 가장 높았는데, 이 숫자가 ‘언니’라는 별명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반대편의 시선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유튜브와 방송에서 쌓은 강한 이미지가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이나 언론계에서는 “지나치게 진영적이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최민희 의원 프로필을 읽을 때 이 양면성을 함께 기억해 두시면, 뒤에 나올 논란들이 왜 그렇게 크게 번졌는지 훨씬 쉽게 이해되실 거예요.
언론운동가에서 재선 의원까지, 최민희 의원 프로필 속 경력의 흐름
민언련 사무총장과 상임대표,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2012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낙선과 공백기를 겪은 뒤 2024년 남양주갑에서 8년 만에 복귀했습니다. 굴곡이 많았던 만큼 경력의 전환점마다 그의 정치 스타일이 조금씩 단단해졌습니다.
민언련 상임대표와 ‘안티조선’ 운동
기자 생활 이후 최 의원의 무대는 시민단체였습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이름을 바꿔 가며 이어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서 그는 교육홍보국장, 기획관리국장, 사무국장, 사무총장을 차례로 맡았고 마지막에는 상임대표까지 지냈습니다. 말단 실무자부터 대표까지 한 조직의 거의 모든 자리를 거친 셈이라 언론계에서는 그를 ‘민언련의 산 역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 그를 대중에게 알린 활동이 이른바 ‘안티조선’ 운동입니다. 특정 보수 신문의 보도 태도를 비판하고 구독 거부를 호소하는 시민운동이었는데, 최 의원은 언론개혁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등을 맡으며 이 흐름의 앞줄에 섰습니다. 지금도 그가 보수 언론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건, 이 시절부터 쌓인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민언련이 원래 하는 일이 “언론을 감시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보도가 공정한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지, 취재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를 따지는 단체죠. 이 이력은 훗날 그가 언론과 충돌할 때마다 양쪽 모두에게 근거로 쓰입니다. 지지자들은 “언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언론을 비판한다”고 말하고, 비판하는 쪽은 “언론 감시 단체 대표 출신이 취재를 막느냐”고 되묻습니다. 같은 이력이 정반대의 논리로 소환되는 셈입니다.
노무현 정부 방송위원회 부위원장과 정치 입문
2006년, 최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전신인 방송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 상임 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위원장이 공석이던 짧은 기간에는 위원장 직무대행도 지냈습니다. 시민단체에서 비판하던 방송 정책을 이번엔 직접 집행하는 자리에 앉은 것이죠. ‘밖에서 문제를 지적하던 사람’이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으로 바뀐 첫 번째 전환점이었습니다.
방송위원회 임기를 마친 뒤에는 성신여대 전임강사, 서울여대 겸임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습니다. 정치와의 본격적인 인연은 2009년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을 맡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2010년에는 야권 통합 시민운동인 ‘국민의 명령’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혁신과통합’과 시민통합당 사무총장을 거쳐 민주통합당이 출범할 때 초대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여기서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2011년 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그리고 2026년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약 15년의 간격을 두고 두 번이나 당 지도부에 입성한 셈인데, 첫 번째가 야권 통합 과정의 ‘합류 몫’이었다면 두 번째는 당원 투표로 직접 따낸 1위였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전혀 다릅니다.
19대 비례대표 4년, 그리고 8년의 공백
2012년 19대 총선에서 최 의원은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에 들어갔습니다. 임기 4년 내내 방송·통신 관련 상임위원회(당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만 활동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종합편성채널의 심사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당원 가입을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게 한 이른바 ‘온라인입당법’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켰습니다.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특위,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국정조사특위에서도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길었습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경기 남양주병에 출마했지만 38.42%로 낙선했고, 이 선거와 관련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18년 대법원에서 벌금 150만 원이 확정됐습니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이면 일정 기간 출마가 제한되기 때문에 정치 활동에 큰 제약이 생겼는데, 2021년 특별사면·복권으로 이 족쇄가 풀렸습니다. 최 의원에게 2016년부터 2024년까지의 8년은 ‘버티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그 사이에도 그는 지역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022년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 선대위의 미디어특보단장을 맡아 친명계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같은 해 지방선거에서는 남양주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46.55%로 다시 고배를 마셨습니다. 2023년에는 국회 몫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후보로 추천됐지만 대통령의 임명이 7개월 가까이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그해 11월 스스로 후보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방통위 수장 자리를 둘러싼 이런 줄다리기는 이후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반복됐습니다. 판사 출신으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을 지낸 뒤 국회에 입성한 인물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김태규 국회의원 프로필을 함께 읽어보시면 방송 정책을 둘러싼 여야의 시각 차이가 훨씬 입체적으로 보이실 겁니다.
22대 총선 남양주갑, 8년 만의 귀환
긴 공백 끝에 반전이 찾아온 건 2024년 4월이었습니다. 22대 총선 경기 남양주갑에서 51.08%를 얻어 당선되며 8년 만에 국회로 돌아왔습니다. 낙선 두 번, 출마 제한, 방통위 상임위원 무산까지 겪은 뒤의 복귀라서 지역에서는 “남양주에서 떨어지고 남양주에서 다시 일어섰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최민희 의원 프로필에서 선거 기록만 따로 모아 보면 이 흐름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 연도 | 선거 | 선거구 | 득표율 | 결과 |
|---|---|---|---|---|
| 2012 | 19대 총선 | 비례대표(19번) | 정당 득표 36.45% | 당선(초선) |
| 2016 | 20대 총선 | 경기 남양주병 | 38.42% | 낙선 |
| 2022 | 지방선거 | 남양주시장 | 46.55% | 낙선 |
| 2024 | 22대 총선 | 경기 남양주갑 | 51.08% | 당선(재선) |
숫자를 보면 38%에서 46%, 그리고 51%로 득표율이 꾸준히 올라갔습니다. 한 지역에서 8년 동안 세 번 도전해 결국 과반을 넘긴 끈기가 지금의 정치적 체급을 만든 바탕입니다. 이 선거 기록은 이후 전당대회에서 그가 “낙선의 시간을 버텨 본 사람”이라는 메시지로 당원들에게 다가가는 데에도 중요한 서사가 됐습니다.

과방위원장 시절의 성과와 논란, 축의금부터 MBC 퇴장까지
복귀 직후 22대 국회 전반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맡아 미디어 관련 입법과 현안을 주도했지만, 2025년 국정감사 기간에 딸 결혼식과 MBC 보도본부장 퇴장 논란이 연달아 터졌습니다. 이 사안은 경찰 수사와 당 윤리심판원 직권조사로까지 이어졌습니다.
22대 전반기 과방위원장, 방송·통신 입법의 한복판
2024년 6월 10일, 최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방위원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과방위는 방송, 통신, 인공지능, 우주, 원자력까지 다루는 거대 상임위입니다. 피감기관 숫자도 많고, 방송사 지배구조처럼 여야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이슈가 몰려 있어 국회에서도 손꼽히게 시끄러운 곳이죠.
그는 위원장으로서 방송·통신 분야의 주요 입법과 현안 논의를 이끌었고, 2025년 8월부터는 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겸하며 미디어 개편 법안 작업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이 과방위원장이 된 것은, 비유하자면 전직 감독이 이번엔 리그 규정위원장을 맡은 것과 비슷한 무게였습니다.
다만 회의 운영 방식을 두고는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지지하는 쪽에서는 “피감기관을 봐주지 않는 단호한 위원장”이라고 했고, 야당이었던 국민의힘 쪽에서는 “일방적이고 고압적인 진행”이라고 반발했습니다. 법안 처리 속도를 두고 일부 언론이 ‘속도전’이라고 비판하자 최 의원이 SNS에서 해당 기자를 직접 겨냥한 일도 있었는데, 이런 장면들이 쌓이면서 ‘언론과 자주 부딪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함께 굳어졌습니다.
국감 중 딸 결혼식, 무엇이 문제였나
최민희 의원 프로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는 대목이 바로 이 결혼식 논란입니다. 2025년 10월 18일, 최 의원의 딸이 국회 경내 한옥 시설인 사랑재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문제는 시점이었습니다. 결혼식 날이 국정감사 기간 한가운데였고, 신부의 어머니는 수많은 피감기관을 상대하는 과방위원장이었으니까요.
비판의 핵심은 이해충돌이었습니다. 감사를 받는 기관이 감사하는 위원장의 집안 경조사에 화환과 축의금을 보내는 구조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모바일 청첩장에 카드 결제 버튼이 들어가 있었다는 점, 피감기관이 보낸 화환이 식장에 놓여 있었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습니다. 국민의힘은 “명백한 이해충돌”이라며 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고, 딸이 SNS에 결혼 날짜를 2024년으로 적어 뒀다며 예식만 국감 기간에 맞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최 의원의 해명은 이랬습니다. 2024년에는 사랑재 예약 경쟁에서 떨어졌고, 2025년 5월 다시 신청해 10월 18일을 배정받았을 뿐이라는 겁니다. 날짜는 딸이 정한 것이며 국감 일정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이었죠. 상임위 관련 기관이나 기업에서 받은 축의금은 즉시 돌려줬다고도 밝혔습니다. 그런데 국감장에서 “문과 출신인 제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는 취지로 말한 대목이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진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핑계처럼 들렸던 거죠.
결국 그는 국감 마지막 날인 10월 30일 밤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논란의 씨가 없도록 관리하지 못한 것이 제 잘못”이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만 사실이 왜곡된 주장에는 기록 차원에서 반박하겠다고 덧붙였고, 위원장직 사퇴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직후 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전국 성인 1,031명)에서는 47.8%가 “사퇴해야 한다”, 35.1%가 “사퇴하면 안 된다”고 답해 여론도 팽팽하게 갈렸습니다.
MBC 보도본부장 퇴장 조치와 엇갈린 평가
결혼식 논란과 거의 같은 시기에 또 하나의 장면이 화제가 됐습니다. 국정감사 도중 최 위원장이 MBC 보도본부장을 회의장에서 퇴장시킨 일입니다. 위원장이 회의 질서를 위해 퇴장을 명할 권한은 있지만, 그 대상이 공영방송의 보도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국회가 보도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당 안팎의 반응도 미묘했습니다. 같은 당 박지원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퇴장 조치가 ‘과유불급’이었다고 평가했고, 당 대표가 위원장과 직접 통화했다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공개적으로 두둔하기보다 거리를 두는 분위기가 감지됐다는 점이 이 사안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반면 최 의원은 SNS에 “방송사 간부는 지적당하면 안 되느냐”며 퇴장 조치가 정당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 두 사건이 겹치면서 시민단체들도 움직였습니다. 경실련은 위원장 권한을 사적으로 행사했다고 비판했고, 여성 정치 관련 단체는 사과에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언론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다른 쪽에서는 “권한을 과하게 휘두르는 위원장”으로 보이는, 그야말로 같은 장면이 정반대로 해석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경찰 압수수색과 당 윤리심판원 직권조사
논란은 정치 공방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5년 10~11월, 시민단체와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운영자 등이 최 의원을 청탁금지법 위반과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1월 23일,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사랑재를 관리하는 국회사무처 운영지원과를 약 2시간 동안 압수수색했습니다.
경찰이 들여다본 지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알려졌습니다. 피감기관 등으로부터 축의금을 받은 행위가 법 위반인지, 그리고 최 의원이 딸 대신 본인 계정으로 사랑재 대관을 신청했는지입니다. 같은 시기 민주당 윤리심판원도 최 의원에 대한 직권조사를 명령했고, 최 의원은 “직권조사까지 할 사안인지 의문이지만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여기서 꼭 짚어둘 점이 있습니다. 고발과 압수수색은 수사의 과정일 뿐, 혐의가 확정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 수사의 최종 결론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향후 처분 결과에 따라 이 사안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최민희 의원 프로필을 업데이트할 때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 수사 결과입니다.

2026 수석최고위원 당선과 앞으로의 행보
논란 속에서도 2026년 8·17 전당대회에서 18.35%로 최고위원 1위에 올라 민주당 역사상 첫 여성 수석최고위원이 됐습니다. 다만 전당대회 기간 오마이TV 취재방해 논란이 불거졌고, 김민석 대표 체제에서 ‘친청계’ 수석최고위원으로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숙제도 안게 됐습니다.
8·17 전당대회, 18.35%로 거머쥔 첫 여성 수석최고위원
2026년 8월 17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제3차 정기전국당원대회는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새로 뽑는 자리였습니다. 당 대표에는 김민석 의원이 선출됐고, 최고위원 선거에서는 최민희 의원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최고위원 중 최다 득표자에게 주어지는 수석최고위원 자리, 그것도 당 역사상 첫 여성 수석최고위원이었습니다.
| 순위 | 후보 | 최종 득표율 | 분류 |
|---|---|---|---|
| 1위 | 최민희 | 18.35% | 친청계 |
| 2위 | 박선원 | 17.57% | 친명계 |
| 3위 | 서미화 | 16.60% | 친명계 |
| 4위 | 이성윤 | 16.35% | 친청계 |
| 5위 | 한민수 | 15.86% | 친청계 |
| 6위(낙선) | 김용 | 15.26% | – |
순회경선 내내 박선원 의원과 엎치락뒤치락했는데, 마지막 수도권 경선에서 격차를 벌리며 1위를 굳혔습니다. 세부 득표를 보면 권리당원 18.78%, 국민 여론조사 17.88%로 두 영역 모두에서 고르게 강했습니다. 결혼식 논란과 취재방해 논란을 안고도 1위를 했다는 건, 당원들 사이에서 그의 지지 기반이 그만큼 단단하다는 뜻입니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3명이 정청래 전 대표와 가까운 이른바 ‘친청계’로 분류되면서, 새 지도부의 구도도 흥미로워졌습니다. 당 대표는 김민석, 최고위 다수는 친청계라는 묘한 균형이 만들어진 거죠. 최 의원은 당선 직후 SNS에 “눈물 나게 감사하다, 두 배 세 배로 갚겠다”며 지역구 남양주갑의 응원단 당원들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오마이TV 취재방해 논란, 양쪽 주장 정리
당선까지의 길이 깨끗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전당대회 순회경선이 한창이던 8월 8일 인천 합동연설회 현장에서, ‘최민희’ 명찰을 단 관계자들이 오마이TV 중계 카메라 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렌즈를 종이로 가리는 장면이 영상으로 공개됐습니다. 다음 날 최 의원은 페이스북에 특정 오마이뉴스 기자를 ‘조선일보 쪽 출신’이라고 지칭하는 글을 올렸는데, 지목된 기자는 인천 현장의 당사자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 커졌습니다.
양측의 주장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오마이뉴스 노조와 기자협회 지회는 취재 방해이자 특정 기자에 대한 ‘좌표찍기’라며 공개 사과와 함께 최고위원 후보직·의원직 사퇴까지 요구했습니다. 반면 최 의원 측은 오마이TV가 최 후보를 과도하게 클로즈업해 생중계 댓글에 욕설이 쏟아졌고, 이를 기록하려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카메라를 가린 건 기자가 보좌진 얼굴을 찍으려 해서 막은 것이라는 입장이었죠. 최 의원 본인은 “나는 그 현장에 없었다”며 해당 장면을 자신의 행동처럼 표현한 보도들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습니다.
이 사건이 유독 크게 번진 이유는 앞서 본 이력 때문입니다. 언론 감시 단체의 대표를 지냈고, 언론개혁을 대표 의제로 삼아 온 정치인과 관련된 일이었으니까요. 한 언론 전문지는 기자수첩에서 “언론에 적대적이어도 당선에 무리가 없는 시대”라는 취지로 이 현상을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지지층에서는 특정 매체의 보도가 애초에 편향적이었다는 반론이 거셌습니다. 경선 기간에는 다른 후보 연설 중 “안 빠졌습니다!”라고 끼어든 일로 상대 후보의 항의를 받고 “앞으로 예의를 지키겠다”고 말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김민석 지도부 속 ‘친청계’ 수석최고위원의 숙제
수석최고위원이 된 뒤 최 의원은 곧바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8월 19일 부산 현장최고위원회의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해 탄핵을 포함한 거취 논의에 즉시 들어가자고 제안했고, 전당대회 결과를 두고는 “민심이 당심을 견제한 절묘한 결과”라고 해석했습니다. 다음 날인 20일에는 김민석 대표가 발표한 지명직 최고위원 인선을 두고 “최고위 의결 사안인데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재고를 공개 요청했습니다.
이 장면들은 앞으로 그의 역할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는 예고편 같습니다. 당 대표와 다른 계파의 수석최고위원은 지도부 안의 ‘브레이크’이자 ‘엑셀’ 역할을 동시에 하게 됩니다. 절차와 원칙을 이유로 대표에게 제동을 걸 수도 있고, 지지층이 원하는 강한 메시지를 앞장서 낼 수도 있죠. 다만 그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표면화될 위험도 함께 커집니다. 그는 당 미디어공공성강화TF 단장도 맡고 있어, 언론·방송 관련 정책 논의에서는 사실상 당의 얼굴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가 전당대회에서 강조한 단어 중 하나는 ‘민생·실용 확장 노선’이었습니다. 정치권의 민생이라는 말이 결국 우리 생활에서 가장 먼저 체감되는 곳은 매달 날아오는 고지서입니다. 마침 올해는 공시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9월분 보유세 부담을 체감하신 분들이 많았는데, 내 집 세금이 실제로 어떻게 매겨지는지 궁금하시다면 재산세 과세표준 계산법 2026 글에서 공시가 구간별 실제 세액을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정치 뉴스를 읽는 눈과 내 지갑을 지키는 눈은 생각보다 가까이 붙어 있으니까요.
남은 변수도 분명합니다. 축의금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 당 윤리심판원의 판단, 그리고 언론계와의 관계 회복 여부가 앞으로 그의 정치적 체급을 결정할 세 갈래 길입니다. 지지층의 열광이 계속 힘이 될지, 중도층의 피로감이 발목을 잡을지는 결국 수석최고위원으로서 보여줄 결과물에 달려 있습니다.
마치는 글
최민희 의원 프로필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이 같은 주제를 40년 동안 붙잡고 서로 다른 자리에서 씨름해 온 궤적이 보입니다. 기자로 시작해 언론 감시자, 방송 정책 행정가, 과방위원장을 거쳐 이제는 집권 여당의 수석최고위원이 됐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쌓인 강한 추진력은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돌아왔지만, 결혼식 축의금과 취재방해 논란처럼 그 추진력이 만든 그림자도 함께 짙어졌습니다. 앞으로 그를 평가하는 기준은 화려한 이력보다 수사 결과와 지도부에서의 실제 성과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새로운 소식이 나오면 이 글도 차근차근 업데이트해 두겠습니다. 정치인을 볼 때 한쪽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력 전체의 맥락을 함께 읽는 습관, 그게 결국 가장 정확한 판단으로 이어진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