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별세 소식이 2026년 4월 7일, 대한민국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뒤흔들었습니다. 제주올레길을 만들어 전국에 걷기 열풍을 일으킨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향년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순한 유명인의 부고가 아닙니다. 제주의 돌담길을 걸으며 위로받았던 수많은 사람들, 올레길 위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이들에게, 이 소식은 그 어떤 이별보다 더 가슴 깊이 새겨졌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서명숙 별세의 배경이 된 그분의 생애와 업적, 제주올레길의 탄생 과정, 그리고 암 투병과 마지막 순간까지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서명숙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분도, 올레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 분도 끝까지 읽어보시면 이 길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를 가졌는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서명숙은 누구인가 — 22년 언론인의 뜨거운 삶
서명숙 별세 소식에 많은 이들이 “도대체 어떤 분이었나요?”라고 묻습니다. 그분의 이름 앞에 붙은 수식어들을 먼저 살펴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시사주간지 최초 여성 편집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제주올레 창시자 — 어느 하나도 쉽게 이룰 수 없는 것들입니다.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난 소녀
서명숙은 1957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제주의 바람과 바다, 오름과 곶자왈 사이에서 자란 그는 서귀포초등학교, 서귀포여자중학교, 신성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공부하며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고향 제주의 길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을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1985년 월간지 ‘마당’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후 ‘한국인’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1989년 시사저널 창간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기록 하나가 세워집니다. 국내 시사주간지 최초의 여성 편집장이라는 역사적인 자리에 그가 오른 것입니다. 1990년대 대한민국 언론계에서 여성이 시사지 편집장에 오른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파격적인 일이었는지는 지금의 시각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22년 언론 생활의 치열함 속에서
시사저널에서의 활약 이후, 그는 인터넷 언론의 새 지평을 연 오마이뉴스의 편집국장까지 역임하며 총 22년이라는 긴 시간을 언론인으로 보냈습니다. 정치부 1세대 여기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그 세월은 화려했지만 동시에 몸과 마음을 소진시키는 나날이기도 했습니다.
언론인 서명숙은 늘 세상을 바꾸는 글을 써왔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글이 아니라 ‘길’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전환점은 2006년, 스페인으로 떠난 한 번의 여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 피어난 꿈 — 제주올레길 탄생의 비화
서명숙 별세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22년간 쉼 없이 달려온 그가 잠깐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기로 결심한 그 순간이, 훗날 대한민국 전체를 바꿀 혁명의 씨앗이 되었으니까요.
47살, 무작정 짐 싸고 스페인으로
편집국장 임기를 6개월 앞두고 돌연 자리를 내려놓은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향해 떠났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중세 이후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 순례 코스로, 프랑스 생장 피드포르에서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약 800km의 대장정입니다.
2006년 9월 10일 출발해 10월 15일까지 36일 동안 800km를 걸으며, 그는 50년의 인생을 차근차근 들여다보았습니다. 과거의 실수들, 부족했던 부분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 쉬지 않고 걸으면서 비로소 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걷는 동안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 그게 서명숙이 발견한 걷기의 진짜 힘이었습니다.
“내 고향 제주에도 이런 길이 있어야 해”
산티아고를 걸으며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내 고향 제주에도 이런 길이 있어야 한다.’ 오름과 곶자왈, 바다와 돌담길로 가득한 제주에 사람들이 쉬어가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도보 여행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순례 경험의 영감을 품고 2007년 고향 제주로 귀향한 서명숙은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설립하고 제주올레 1코스를 개장합니다. 기자 출신답게 그는 민간 주도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자원봉사자와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어 옛길을 살려내고, 제주의 자연과 마을 공동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나간 것이지요.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큰길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뜻합니다. 낯선 여행자도 제주의 집 앞까지 들어와 쉬어갈 수 있는 길 — 그것이 서명숙이 꿈꾼 올레길의 본질이었습니다.
27개 코스, 437km — 서명숙이 남긴 걷기 혁명
서명숙 별세로 우리가 잃은 것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려면, 그가 제주올레를 통해 무엇을 이뤄냈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결심이 대한민국 전체의 여행 문화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직접 증명했습니다.
2010년대를 뒤흔든 ‘걷기 열풍’
제주올레 1코스 개장 이후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빠르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던 대한민국 여행 문화에, 느리고 소박하게 걷는 문화가 처음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걷기 열풍’은 제주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제주올레를 모델로 삼은 도보 여행길이 전국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서울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 수많은 걷기 코스가 제주올레의 성공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주올레의 영향력은 국내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일본에도 도보여행길의 모델이 되어 한·일 우정 올레 코스가 만들어지는 등 국제적인 파급 효과를 낳았습니다.
27개 코스 완성까지 15년의 여정
| 연도 | 주요 사항 |
|---|---|
| 2007년 | 제주올레 1코스 개장 |
| 2008년 | 저서 ‘놀멍쉬멍걸으멍-제주올레여행’ 출간 |
| 2010년 | 저서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출간 |
| 2013년 | 아쇼카 펠로우 선정 |
| 2017년 |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
| 2019년 | 저서 ‘서귀포를 아시나요’ 출간 |
| 2022년 | 27번째 코스(18-2코스) 개장, 27개 코스 437km 완성 |
| 2026년 4월 7일 | 별세, 향년 68세 |
2022년, 제주올레 27번째 코스인 18-2코스를 개장하며 15년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총 27개 코스, 437km — 이 숫자는 단순한 거리가 아닙니다. 서명숙과 수많은 자원봉사자, 제주 주민들이 함께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일궈낸 삶의 흔적입니다.
‘여행자, 지역민, 자연이 함께 행복해야 한다’
서명숙의 올레길이 여타 개발 사업과 달랐던 것은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여행자, 지역민, 자연이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길을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마을 공동체까지 가꿔나갔습니다. 클린올레 캠페인을 통해 환경 보호를 실천했고, ‘1사 1올레’ 결연 프로그램으로 지역 주민과 도시 기업을 연결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했습니다. 제주올레는 걷기 코스가 아니라 살아있는 지역 생태계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에는 사회 시스템을 혁신하는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아쇼카 펠로우’에 선정됐고, 2017년에는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습니다.

투병 끝에 찾아온 이별 — 서명숙 별세의 안타까운 경위
서명숙 별세가 더욱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암과 싸워 한 번은 이겼다고 믿었던 그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병이 깊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암 완치 판정, 그리고 폐 전이
서명숙 이사장은 약 10년 전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술과 담배를 독하게 끊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방법으로 맞섰습니다 — 바로 걷기였습니다. 부지런히 걷고 또 걸어 완치 판정을 받은 그는 “20년을 건강하게 산 건 열심히 걸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암세포는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 폐로 조용히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옆구리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늑막에 물이 차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고, 그것이 불과 병원을 처음 방문한 지 20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동생을 먼저 보낸 슬픔, 그리고 마지막 작별
안타깝게도 그 무렵 서명숙 이사장에게는 또 하나의 이별이 찾아왔습니다. 막내동생이자 제2대 제주올레 탐사대장이었던 서동성 씨가 2026년 3월 14일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레길을 함께 만들어온 가장 가까운 동반자를 잃은 후, 서명숙 이사장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치료를 받던 그는 지난주 몸 상태가 호전되어 주말에 제주로 돌아왔다가, 전날 밤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2026년 4월 7일 영면에 들었습니다. 제주대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생의 마지막을 조용히 마무리했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임종 전 그는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서울에서도 암은 내 몸에 있었던 것 같아. 20년을 건강하게 산 건 열심히 걸었기 때문이고. 올레길에서 행복해라.”
이 한 마디에 서명숙이라는 사람의 전부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길에서 행복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 —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남긴 진심 어린 유언이었습니다.
빈소·영결식 안내 및 추모의 물결
서명숙 별세 이후 전국에서 추모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올레길 창시자로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서귀포로 향하고 있습니다.
장례 일정
- 빈소: 서귀포의료원 장례식장 3분향실
- 발인: 2026년 4월 10일(금) 오전 8시 30분
- 영결식: 2026년 4월 10일(금) 오전 9시, 제주올레 6코스 서복공원 잔디광장
- 장지: 양지공원
영결식 장소로 제주올레 6코스 서복공원 잔디광장이 선택된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그가 평생 걷고 또 걸었던 올레길 위에서 마지막 작별을 하는 것, 이보다 더 서명숙다운 마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각계각층의 추모
KBS, 연합뉴스,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등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서명숙 별세를 주요 기사로 다뤘습니다. 매일경제는 ‘치유와 성찰의 올레길 내고 마지막 길 떠났다’고 표현했고, 중앙일보는 ‘올레길에서 행복하라, 길 내는 여자 서명숙 하늘길 떠나다’라는 헤드라인을 달았습니다. 그가 걷기 문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반응들입니다.

마치는 글
서명숙 별세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수백만 명이 제주올레길 위에서 울고 웃고, 위로받고 새 출발을 다짐했던 그 모든 순간들의 원점이 사라진 것입니다. 22년간 세상을 글로 바꾸려 했던 언론인이, 결국 ‘길’이라는 가장 오래된 언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와닿습니다. 위암 판정을 받고도 걷고 또 걸어 살아남았던 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어진 병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을 때, 우리는 인생이 얼마나 불확실한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437km의 길은 영원히 제주를 감싸 안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당신도 가장 가까운 올레길 한 코스를 걸으며, 서명숙 이사장이 전하고 싶었던 그 메시지를 몸소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올레길에서 행복해라” — 이 한마디가 그의 진심이었고, 그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아름다운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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